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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가/의서

  • 구택규(具宅奎)

구택규(具宅奎 : 1693~1754)

조선 후기의 문신.
본관은 능성(綾城)이고, 자는 성오(性五), 호는 존재(存齋)이며, 초명은 명규(命奎)이다.

1714년(숙종 40) 증광문과에 병과(丙科)로 급제, 청환직(淸宦職)을 지내다가
1721년(경종 1) 신임사화(辛壬士禍) 때 노론(老論)으로 지목되어 오랫동안 외직에 있었다.
1731년(영조 7) 진주목사(晋州牧使)에 임명되고,
1734년 금성현감(錦城縣監)을 역임했고, 이듬해 동지사(冬至使)의 서장관(書狀官)이 되어 청나라에 갔다.
1736년 동래부사(東萊府使), 이어 장례원판결사(掌隷院判決事) · 승지 · 회양부사(淮陽府使) 등을 거쳐
1740년 부사직(副司直)으로서 찬집당상(纂輯堂上)에 올라 《속대전(續大典)》을 찬술하고, 《증수무원록(增修無寃錄)》을 훈석(訓釋)하였다.
1746년 강원도심리사(江原道審理使)가 되었고, 1748년 공조참판 · 형조참판을 거쳐 1753년 한성부판윤에 이르렀다.